황우석과 사채업자

인간은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것을 가지고 산다.’최소한의 양심’. 그것이 바로 인간과 짐승을 가르는 차이.

인간은 야만의 시대를 겪었다. 사람의 생명보다 국가의 이익, 과학의 발전이 더 중요하던 시기. 불과 몇십년 전 유럽의 히틀러는 유대인을, 아시아의 일본은 731부대에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를 가지고 실험을 했단다.

‘짐승보다 못한 놈들’

요즘에도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이 활개를 친다. 보라. 공중 화장실마다 붙어있는 ‘장기매매 알선’ 선전지들을.. 인간의 신체가..인간의 권리가 매매의 대상이 되는 시절. 아직 야만은 끝나지 않았다.

황우석 교수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국익을 위해서 진실을 덮어야 한다는 야만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넘쳐난다. 대한민국은 짐승의 울음소리로 시끄럽다.

황우석 교수는 물론 실정법을 어기진 않았다. 생명윤리법이 없던 시절의 문제이니….황교수가 어긴 것은 단순한 국제 윤리 강령이다. 아무것도 아닌 윤리강령. 법적 실효성도 없는…국익을 위해서 그 정도 위반은 가능하다????

임상실험에서 지켜야할 윤리 강령은 지난날 인간의 야만의 역사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만은 최소한 지키자’ 바로 이런 취지다. 인간과 짐승을 가르는 최소한의 척도로 마련한 아주 초보적인 규정인 게다.

지난 수십년간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고 돈놓고 돈먹는 자본주의 세상은 시대의 요청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이라면 아무리 돈이 좋고 발전이 좋아도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황교수가 지키지 않은 윤리강령이다.

악덕 사채업자들은 돈을 못 갚는 사람의 신체를 매매한단다. ‘인간도 아닌 넘들’ 바로 사회가 허용하는 윤리의 한계선을 넘어선 게다.

황교수. 책임자에게 저항이 곤란한 연구원의 난자를 사용할 수 없다는 국제적으로 허용된 윤리의 한계선을 넘어선 게다.

다같이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 할 문제다. 붉은옷 걸치고 광장에서 ‘대~한민국’ 외칠 일이 아니란 말이다.

‘정신 좀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