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를 끌어들인 신라

고래의 이야기에 고구려를 도운 말갈과 백제를 도운 왜구를 자꾸 걸고 넘어지는데 정말 이상하군요.
말갈은 만주,연해주 지역에 퍼진 한민족의 한 갈래였고 그 당시 고구려계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고구려 자신들의 조국을 위해 힘껏 싸울 수 밖에 없죠.

고구려가 무너진 후에는 새 고구려 건설이라는 기치 아래 대조영을 중심으로 말갈인들과 고구려때의 일부귀족들이 함께 대진국 발해로 일어섰습니다.
고구려 원래 민족구성이 모두 한민족계통인 예족,맥족,환족,말갈(여진)족,숙신등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부여에서 함께 파생한 고구려와 백제는 그 민족구성원이 같습니다.
백제의 천황 역시 성이 부여씨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왜국은 백제22담로의 한 분국이자 행정구역이었습니다.
그러니 역시 자신의 조국을 위해 싸울 수 밖에 없죠.
KBS일요스페셜에서도 ‘백제22담로의 비밀’로 방영했었습니다.

고래의 논리로 따지자면 지금의 대한민국의 군인은 경기도,경상도,충청도 등의 각 지역에서 징집된 외국인으로 구성된 외인부대라 말입니까?

김춘추를 가둔 이유에 대해서 삼국사기는 그저 죽령 이북의 땅을 내놓으라는 연개소문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받아들일수 없다고 하여 죽음의 위기에 처한것으로 나오지만….

단재 선생은 직접 발로 뛰여 자료를 모았습니다. 현존하지 않는 사서인 해동잡록, 서곽잡록 등의 사서를 교본으로 조선상고사를 저술한 분입니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는 이것에 대한 과정이 보다 더 자세히 나옵니다. 김춘추가 고구려로 동맹을 맺으려고 몸소 적국의 심장부로 외교사신으로 갔을 무렵 공교롭게도 때마침 신라의 적국인 백제에서도 의자왕이 부여성충을 사신으로 보내어 고구려와 동맹을 맺으려고 했었습니다. 부여성충은 고구려 연개소문과 동맹이 거의 다 성사될 무렵 김춘추가 뛰어난 언변으로 인하여 백제와의 동맹대신 신라와의 동맹쪽으로 고구려 연개소문이 가닥을 잡아가려고 하였습니다.

이를 탐지한 성충은 연개소문에게 글을 올리는대 그 내용이 수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키지 못한 이유는 군량의 부족때문이었으니 동해안에 치우친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에 막혀 군량을 대주지 못하지만 만약 백제가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해 해로로써 당나라에게 군량을 대준다면 고구려는 무슨수로 이것을 막겠는가? 또한 신라는 이미 예전에 백제를 배신하고 죽령 이북의 땅을 빼았는 바가 있는대 또한 고구려를 배신하지 못할 이유가 뭐겠는가? 라는 서신이었습니다.

만약 신라와 동맹을 맺게 된다면 백제는 당나라와 연합전선을 맺어 고구려 부터 칠수도 있다는 무서운 협박이자 이미 백제를 배신하여 외교적 신뢰성을 잃은 신라를 비난하는 내용을 모두 담아둔 글이었죠. 이를 안 연개소문은 김춘추로부터 죽령이북의 땅을 내놓으면 동맹을 맺겠다고 말을 바꾸게 된것이고 이것은 사실상 신라와의 동맹의지가 없다는 표현이기도 하였습니다.

삼국의 힘을 합쳐 당나라를 정벌하자는 내용역시 이때 성충과 연개소문, 김춘추가 한자리에 고구려 수도 평양성에서 대면할때 한 말로써 연개소문과 성충이 함께 동맹을 맺고 당나라와 칠테니 신라 역시 도와달라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역시 신라로써는 아무런 득이 없으며 또한 당나라와의 외교단절은 곧 자국의 멸망임을 뼈져리게 알고 있는 터라 그러한 요구역시 받아들여지지 못합니다. 이 내용은 환단고기에서도 나오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정식기록이 아닌 야사측 기록에서 전해지는 내용으로써 당시 국제정세를 통해 보았을 때 어느정도 신뢰성이 있다곤 보아집니다.

그리고 당시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신라의 김춘추가 백제를 치기위해 병력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하기위해 평양에 오자 백제에서도 사신으로 와있던 성충과 함께 셋이 한자리에 모여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조선의 뿌리에서 나온 같은 민족이니 서로간에 전쟁을 할게 아니라 삼국이 힘을모아 이 강토를 유린하려고 하는
저 당을 무너트려 잃어버린 대륙을 찾자 “는 이야기를 하는 부분을 보더라도
고구려와 백제,신라는 같은 민족의 나라들인 한국사인 것입니다.

어쨌든 신라는 당을 끌어들였고 그 후의 일은 여러분들도 아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