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남의 눈에 의존해 북핵사태를 해석할 것인가?

현정권의 초기 실세였던 신기남은 미국에 갔다와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일본 등도 개발할 것이고 전세계 핵확산이 일어나고 그러면 우리는 무서운 세상에 살게 된다. 북에 대한 제제를 우리가 주도하므로서 사태의 주도권(키)를 찾아와야 한다’고 했다.

신기남은 북한의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인민군의 포격만으로 서울의 70%가 25분 이내에 파괴될 수 있으며, 북의 생화학무기는 남한 전체인구를 3번 죽일만한 양이란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사람은 두번 죽을 수가 없다. 서울과 워싱턴에 사는 사람들은 정서에 차이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논리가 없으므로, 곧 부시의 논리에 세뇌 된 것이다.

북의 핵무기 개발을 햇볕정책 탓으로 돌려온 조선일보 등의 단편적인 반응도 그러하다. 이는 북의 핵무기 개발을 적어도 표면적으로 중단시킨 94년 제네바 합의를 무력화시킨 부시행정부 정책의 실패는 되도 햇볕정책과는 별 상관이 없다 볼 수 있는 것이 정확한 판단이다. 90년대 북의 경제위기는 수백만의 인민을 굶어죽였는지 몰라도, 핵무기 개발의 속도를 지연시켰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북은 인민이 굶어죽어도 핵무기는 개발할 돈이 충분한 나라이다.

이제 남의 논리에와 단편적인 감정적 접근에서 벗어나, 한국의 이익이란 차원에서 북핵사태가 해석되고 대처가 가능해야 한다. 우리 언론 어디에서도 그런 냉정한 접근은 보이지 않으며, 미국 일본의 언론이나 프랑스, 독일의 시각을 가져가 전해주기에 바쁜 상황이 한심스러운 일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예의 북한의 정교한 외교력에 한반도 사태의 진전을 더욱 기댈 수 밖에 없는 일이 될 것이다.

북이 핵실험을 한 배경에는 중국과 한국이 북한에 대한 괴멸적인 압력을 가할 수 없을 것이며, 이미 제제를 강화해온 미국, 일본의 위협이 현실적으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수준이라는 나름의 판단을 전제한 것이였을 것이다. 그들은 한국와 미국의 정권이 교체될 2년을 견딜만 하다 본 것이며, 또한 핵실험을 안한들 대화를 거부하는 부시정권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에 그런 고난의 시기를 피할 방법도 마땅히 없었을 것이라 본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지적하듯이 미국, 일본의 보수파들은 각기 MD등의 군사력 강화와 일본의 보통국가화의 구실로서 북한의 핵무기를 이용하는 측면이 있다. 그들은 북한의 고립을 심화시키면서 그것을 즐기려 들었다.

북한은 그런 비판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미일을 공격할 수 있는 수준의 핵무장 능력이 자신들에게 있다. 중성자 탄 등을 만들어서 핵탄두를 미사일에 실을 능력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점을 입증하려 한 것이 지금 핵실험의 노림수가 아닌가 한다.

이는 미국으로 부터, 일본의 핵무장을 허용하므로서, 일본이 장차 미국의 영향력에서 한걸음 벗어난 독자세력으로서 중국과 대립하고, 미국의 재정적자를 달러매입으로 감당해 주고 있는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입지가 좁아지는 사태를 방관하기 보다는 북한과 협상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게 할지 모를 일이다.

또한 언제인가 핵무장을 한 통일한국이 등장하는 불행한 사태를 미국과 중국이 더욱이 허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을 강화했을 것 같다.

북에 대한 봉쇄정책은 아무 것도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가져다 줄 수가 없다. 햇볕정책 외에 현실적인 책임감 있는 대북정책은 남한 내의 누구로 부터도, 미국 네오콘의 누구로 부터도 제안된적이 한번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햇볕정책을 부정하려면, 그것 보다 더 나은 정책을 내놓는 것이 책임감 있는 행동이 아닌가. 그런 자신의 논리가 없으므로 북핵을 남의 집 불 난듯이 쳐다보게 되고, 남의 나라 언론과 전문가들의 입을 빌리길 우선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