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끼나와의 대학살 어찌 잊으랴~

일제패망전
일본이 오끼나와인을 같은 일본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생김새도 다르고 다른민족으로 인식했다는말이다.

오끼나와인들은 자신들을 일본인으로 생각하지않는다.
오끼나와인들은 현재도 자신들은 오끼나와인일뿐
일본인이라고 또는 대화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일제시대 이전에 오끼나와인들은 독립된 하나의 나라였다.
대동아공영권 팽창주의 식민주의시대에와서
그들은 강제로 합병된것이다.

일본이 패망기에 접어들고 미군이 오끼나와 상륙작전을 감행하자,
일본은 오끼나와인들을 모두 끌어다가
총알받이로 전면에 배치했다.

무려 해안방어선에 총알받이로 전면배치했던 숫자가 20만이 넘었다.
그들은 총한발 쏘아보지도 못하고 모두 함상공격으로 죽음을 당했다.
일본군들이 후방 제2방어선 땅굴,토굴속에 숨을때,

토굴을파기위해 동원한 오끼나와인들의 숫자는 무려 50만에 이른다.
이들은 수없이 토굴을파다 죽음을 맞이했다.
또한
이들을 그대로 토굴입구쪽에 가둬놓고,
총알받이로 이용했던것이다.

미군이 토벌작전을 감행할때, 미군들은 이들이 일본군인줄알고,
화염방사기,슈류탄등으로 먼저 죽음을 당했던것이다.
이들의숫자가 무려 40만이다.

일본군은 후퇴하면서 모든 오끼나와인들을 죽이라는 본국의 훈령을
받아놓고 있었다.
훗날에 오끼나와인들이 미군에 가담하여, 반군으로 돌아서
참전할것을 염려하여, 모두 죽이라는 본국의 훈령을 이미 받아놓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미 이사실은 전범재판때 밝혀진 일이었다.
오끼나와인들을 수없이 죽여놓고
전후에 슬그머니 오끼나와를 자기영토로 인정을받고 포함시켜버린것이다.

오끼나와인들은 이렇게 또다시
일본의 속국이 되어 버린것이다.

지금의 오끼나와인들은 말한다.
우리는 오끼나와인일뿐대화인이나 일본인이 아니다.
간혹
지금도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기회만된다면 이들은 독립하기를 원한다.
단지 이들이 머뭇거리는것은
높은 일본의 경제의 혜택을 받지 못할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때문에 독립을 포기하는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래도 많은이들이 독립을 원한다고 말한다.
아직도 독립못한 나라가 바로 오끼나와다.
일본이 왜 쉽게 오끼나와를 미군기지로 내주었는지 모르겠는가?

오끼나와에가면 시내한복판 대학건물 바로 옆으로는 하루 수없이 미군 전투기와
헬기가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다.
얼마전에는 미군헬기가 대학건물을 들이받아 큰사고를 냈다.

일본은 이렇게 오끼나와를 낼름 접수해버리고,
열도 아래로 더내려가동중국해 조어도와우리나라의 이어도(파랑도)와
같은 보이지도 않는 조그만 돌출섬에 깃대를 꽃아놓고
그것도 영토라고 자신들의 행정구역안에 포함시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