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연성 있는 추론과 사실을 왜곡한 날조의 차이

역사는 일단 1차적으로 기록에 의해 검증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록이란 대개 역사를 쓰는 사람들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니만큼 진실과는 다른 부분이 분명 반영되어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 <제국의 아침>은 그런 문제점을 잘 짚어주었습니다. 역사 기록을 면밀히 살펴볼 때 문제점이 적지 않다는 말이지요.

 

가령『고려사』같은 역사 기록에서는 다 같은 태조 왕 건의 자식임에도 ‘혜종’, ‘정종’, ‘광종’ 중에서 기록상 가장 푸대접을 받은 사람은 혜종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려사』기록 그대로라면 혜종은 권신인 왕 규에게 휘둘리기나 하는 찌질한 국왕으로, 정종은 서경 건설로 백성들을 부려먹기만 한 제왕 정도로 규정되기 쉽지요. 또 왕 규는 천하에 이런 간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것을 드라마 <제국의 아침>에서는 오히려 왕 규를 혜종 정권의 진정한 충신으로, 혜종은 아버지의 유지를 이으려는, 정종은 서경 건설을 통한 고구려(계)의 재도약을 꿈꾸는 사람으로 재해석하여 그려냈지요.

 

이 경우 드라마 <제국의 아침>은 기존의『고려사』자료를 무조건 따르거나 혹은 전면 부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록의 타당성 여부를 먼저 살피고, 타당성이 있는 기록은 살리는가 하면 타당성이 부족한 기록은 합리적인 ‘재조정’을 거쳐서 새롭게 극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렇듯 개연성 있는 추론을 통하여 살을 붙이고 상상을 더하는 것 그 자체는 추론과 가정이라는 면에서 당위성을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근거가 없는 것까지 마치 있었던 일인 양 방영하는 것은, 개연성을 갖춘 추론이 아닌 어거지 역사 꾸미기 및 날조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천추태후가 12년 간 정권을 잡고, 그 치세 가운데 내정과 외교에서 거둔 치적을 빈약한대로 자료에 근거하여 추론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극을 만들었다면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가령 김치양과의 로맨스야 개인의 사생활인데 그것을 굳이 유학자처럼 ‘불륜’으로 몰아갈 이유는 없지요.

 

그렇지만 거란의 승천태후처럼 직접 전장에 나섰다는 기록도 없고, 그래야만 하는 역사적 개연성도 없는데 굳이 천추태후가 전장에 나섰다는 식의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분명 날조이고 이런 부분은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이런 점은 잔다르크니 나폴레옹이니 하는 문제점들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말씀하신 취지가 외국의 ‘역사미화’를 경계하자는 것인줄은 알겠지만 그것과 천추태후 문제와는 별 상관 관계가 없어보입니다.

 

솔직히 지금의 천추태후 드라마는 지나치게 날조되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성종에 의해 귀양살이를 할 동안 나름대로 ‘지략가’로서 스스로를 준비하는 천추태후의 모습을 그렸으면 어땠을까요?

 

만약 귀양살이에서 풀려난 후 아들인 목종 시대에 신하들이나 장군들의 갈등을 조절한다던가 하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천추태후를 그렸다면 훨씬 설득력과 개연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용장은 양립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데 그 당시에는 용장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가령 강감찬, 서 희, 강 조, 양 규, 강민첨, 김종현 등의 장수(혹은 문신 출신 장군) 들이 그 좋은 예인데 이런 유능한 장군들은 의외로 트러블이 생기기가 쉽지요.

 

하지만 양립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이 용장들을 양립시킬 수 있다면, 그들 위에 설 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극을 전개했다면 굳이 어거지 액션장면 동원하지 않고서도 천추태후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었을 터인데요.

 

오히려 굳이 어거지 액션보다는 평양 순시를 했다는 기록이『고려사』에도 있으니 그런 때에 무복이나 갑옷을 입은 모습을 간간이 보여주었다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경우라면 ‘개연성’도 있으니 역사왜곡이라 할 수 없겠지요.

 

실제 사극에서도(용의 눈물 같은 경우) 유동근이 그런 모습을 보였는데, 굳이 액션 장면 보이지 않고서도 충분히 위엄있고 늠름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개연성 있는 방식을 두고 굳이 채시라 씨가 무리하게 액션 씬을 연기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근거와 추론이 존재하지 않는 상상력은 거짓된 물흐리기이자 날조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천추태후는 비판 받을 여지가 크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천추태후의 방향이 심히 우려됩니다. 제발 ‘막장사신기’의 경우처럼 어거지 팜므 파탈은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